50대 중년 아빠인 필자는
나름 내 분야에서는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있지만
이제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은퇴 이후에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
행복하지만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보람차고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나 관심이 많은 일을
하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평소 관심이 많은 사회적 약자, 특히 장애인의 삶을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한다면 은퇴 후의 삶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보람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은 하곤 하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의 전문성이 녹아든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근래 읽었던 책 한권이 이런 필자의 생각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는 것을 넘어서
날개를 달아주었다.
“마이너리티 디자인” 의 저자인
사와다 도모히로는 일본의 잘나가는
카피라이터였다.
대기업의 광고를 전담해서 수억엔의
홍보예산을 집행하기도 했고
한때는 그가 만든 광고 카피가 방송을 통해
8천만명에게 보여지기도 했다.
일은 한없이 보람찼고 언제까지 계속될 줄 알았습니다.
그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아들이 태어나고
3개월이 지난 뒤였다.
아이는 망막형성 이상증으로 영원히 앞을 볼수 없다고 했다.
“내가 만든 멋진 광고를 아들이 볼수 없다니..”
그는 절망에 빠졌지만, 이내 희망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은 다양한 장애를 가진 장애당사자를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장애는 고칠수 없지만,
장애를 극복하기보다는 그들의 가치를 빛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아들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맨 처음 도전한 일은 그의 전공을 살려
시각장애인 축구대회의 홍보 포스터를 만드는 일이었고
“보이지 않아, 그뿐.”이라는 카피로
대회 흥행에 큰 역할을 하고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두 번째 도전은 패션 박람회에서 의족 장애인들의
패션쇼인 “절단 비너스 쇼”를 기획한 일입니다.
다리 절단으로 인해 외모에 자신감을 잃고
외출도 하지 않던 절단 장애인들이 모델로 선 쇼는
관람객들에게 의외의 신선함과 용기를 주었고
이는 “마이너리티 디자인”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에는 유명 패션기업과 협력하여 기성품의 옷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는 장애인 “한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서
제품을 개발하는 “041(All for one)”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휠체어 장애인이 입고 벗기 쉽도록
플레어도 타이트도 되는 스커트,
침을 많이 흘리는 여자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줄
턱받이로 변신하는 드레스 등은 특정 장애인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개발되었지만,
일반 고객에게도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
한 손밖에 못쓰는 사람을 위한 한 손으로 켜는 라이터,
시력을 잃어가는 애인과 편지를 주고받기 위해 발명한 타이프라이터,
누워서 생활하는 사람이 물을 마시기 쉽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부러지는 빨대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해 개발되고 디자인되었지만
사회를 바꾸고 모두의 삶에 도움이 되는 많은 것들이
모두 마이너리티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제품의 개발이나 디자인에
국한되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운동치인 저자는 스스로를 “운동 약자(sports minority)”라고 칭한다.
비단 장애인 뿐 아니라 누구나 어떤 부분에서는
약자이고 소수자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런 모든 운동 약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유루 스포츠를 만들게 된다.
느슨하다, 느긋하다라는 뜻의 일본어 유루이 + 스포츠의 합성어인 유루 스포츠는
핸드볼과 비슷하지만 공에 비누거품을 발라
누구나 공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는 핸드소프볼,
애벌레같이 생긴 자루를 입고 누워서 굴러다니면서
하기 때문에 걷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강자가 되는 애벌레 럭비,
공에 강한 충격을 주면 응애응애 하는 아기 울음소리가 나서
느린 사람이 더 유리한 아기농구,
선수 한사람이 500보를 넘게 움직이면 퇴장당하는 500보 축구 등
잘하고 강한 사람보다는 모두가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이기면 기쁘고 져도 즐거운, 운동치나 장애인이 국가대표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즐길거리이다.
이런 모든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저자의 본업(카피라이터)에서 벗어나서
본업에서 기른 능력을 밖(사회복지 분야)에서
활용했기 때문이다.
본업에서는 기초적인 능력일지 몰라도
다른 곳에서는 유용하게 쓰이는 감사한
능력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필자도 이 책의 저자와 비슷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그렇고
장애를 고칠 수 없지만, 아이를 위해서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 그렇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필자의 전공과는
거의 관련이 없지만, 사회복지 또는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일을 하고자 사회복지사 등의 자격증이나
장애인 여행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전문분야와 너무 다른 분야라서
자신감도 없고 막막한 감이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이 생겼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어려움으로 생각할게 아니라, 내 전문분야의 능력을
새로운 분야에 활용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을 거라는 즐거운 희망인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이 책에서 강조한 것처럼
누군가의 약점은 누군가의 강점을 이끌어낸다라는
생각으로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또, 제 분야의 노하우를 새로 도전하는 분야에 적극 활용한다면
언젠가는 무언가를 이루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거라고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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