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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

24절기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4대 명절(?) 한식의 유래와 의미, 풍습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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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년 아빠인 필자는 시리즈로 우리나라의 24절기에 대해
그 유래와 의미, 풍습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한식은 24절기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의 4대 명절로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큰 명절이었다.

한식은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이다.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과 같은 날이거나 하루 뒤가 된다.

(24절기 중 다섯번째 청명 - 의미와 풍습 바로가기)

 

 

 

ㅇ 한식의 유래

   한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어서 명확하지는 않다.

   그 중 제일 유력한 유래를 소개하자면 조선시대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궁이나 지방의 각 관아에 보관하고 있던 불씨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불로 교체해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 행사의 경우 입춘이나 입하, 입추나 입동 때

6월의 토왕일에 진행되었던 행사로 두 개의 나무를 맞대고 비벼서 새 불을 만들어

궁이나 각 관아, 대신들에게 그 불씨를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한식의 유래와 의미, 풍습

 

   한식에는 차가운 음식을 먹는데, 이는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중국 진나라 문공이 19년간 망명생활을 하던 때에 개자추라는 신하가

충심으로 보좌했으나, 훗날 문공이 왕위에 오른 후 그를 잊어버리고

등용하지 않았다.   이에 개자추는 산에 은거했고 뒤늦게 깨달은 문공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는데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불에 타죽고 말았다.

 

그 후에 그를 애도하기 위해 불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 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고 하여 그 시기에 3일간 불을 금지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ㅇ 한식의 풍습

   한식이 언제부터 명절로 여겨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조선시대에는

한식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 고려시대 한식에는 불 사용을 금하고 성묘를 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로 여겼다.

 

   - 조선시대에도 역시 불 사용을 금하였으며 성묘를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특별히 왕실에서는 종묘 제향을 지내고 능묘를 보수하는 등 조상숭배를 중요시했다.

근래에는 한식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큰 명절로 여기지는 않지만

성묘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 남아있기도 하다.

 

 

 

   - 한식은 계절상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농사를 위해 소의 상태를 점검하고 볍씨를 담그곤 했다.

하지만 한식에 씨를 뿌리면 안된다고 한다.   이때 씨를 뿌리면 말라죽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새가 씨를 파먹는 날로 고초일이라고 해서 절대 씨를 뿌리지 않았다.

 

   - 한식의 날씨를 살펴서 그 해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한식에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하면 풍년이 든다고 했으며 

어촌에서는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했다.   그러나, 폭풍이 불고

큰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 개사초란 한식에 진행하는 산소 손질을 말하는 것으로

무덤이 지저분하거나 잔디가 부족해보일 때 잔디를 다시 입히는 일을 말한다.

개사초라고도 하지만 사초나 떼입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식은 손 없는 날이라하여 귀신이 움직이지 않는 날로 여기며

산소에 잔디를 새로 입힌다거나 비석을 세우기도 하고 상석을 세우기도 하며

이장을 해도 괜찮은 날로 여긴다.

 

   - 강원도 지역의 경우 과일나무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고

‘과일나무 시집보내기’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는 열매를 잘 맺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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