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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거란전쟁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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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50대 중년 아빠인 필자가 TV에서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다.

오랫만에 하는 대하드라마이기도 하고 우리가(필자만 그럴수도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고려 역사에 대해 다룬 프로그램이라서 오히려 더 흥미를 이끄는 것 같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지난 설 연휴기간에는 고려거란전쟁 드라마를 방영하지 않고 특집을 편성해서 많이 아쉽기도 했다.

 

고려거란전쟁 드라마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 2, 3차에 걸친 고려와 거란간의 치열하고도 처절했던 전쟁(여요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허구가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인데, 과연 실제 역사적 사실과 어떻게 다른지 함 알아보자.

우선 거란족에 대해 알아보면 거란족은 8개 부족으로 이루어진 부족장 사회로 농사와 목축을 함께하는 민족이었다.   8개 부족으로 나뉘어있던 거란족은 당나라 멸망 후 야율아보기가 통일을 이루어 급성장하며 결국 926년 발해까지 멸망시켰다.

이후 중국의 베이징 부근의 연운 16주를 획득한  이후 대요라는 연맹왕국을 세워 요나라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우리 나라에서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해 고려가 되었는데 요나라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외교관계를 청하였으나 왕건이 이를 거절하였다.   이후 고려와 요나라는 외교적으로 척을 지게 되었다.

 

1차 고려-거란 전쟁은 993년에 거란의 동경유수 소항덕(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거란이 내세운 침략의 명분은 고려가 거란의 영토를 침범하고 있고 고려가 거란에 대해 정식적인 외교관계를 거부하고 있으며 송과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쟁 초반에 거란군이 고려의 영토를 점령하고 수도인 개경까지 함락하는 등 큰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여기서 역사시간에 배웠던 유명한 '서희의 담판'이 나온다.   서희는 전투없이 외교적 담판만으로 거란과 강화를 맺는 대신에 강동 6주를 획득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거란은 송나라와의 전쟁에 집중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신하들이 국토를 떼어주고 항복하자고 주장하였지만, 외교관계에 능하고 국제정세에 밝았던 서희는 요나라가 여진족과의 전쟁때문에 여유가 없어 고려와 본격적인 전쟁이 어려울 것을 간파하고 거란에 여진족 합동공격을 제안하고 압록강을 경계로 땅을 나누고 조공을 보낸다는 조건으로 담판을 이루어냈다.

당시 고려의 왕은 성종이었으며 주요 장수로는 서희, 양규 등이 있다.

2차 고려-거란 전쟁은 1010년 11월 거란의 성종(야율융서)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였다.   이때의 명분은 고려의 강조가 성종을 시해하였음을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고려가 송나라와 계속 교류를 하고 1차 전쟁때 획득한 강동 6주를 반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 초반 거란군이 개경을 함락하고 고려왕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을 가는 등 큰 위기에 빠졌으나, 양규 등의 활약으로 거란군이 퇴각하게 된다.   전쟁 중에 양규는 흥화진에서 거란군을 크게 무찌르고 곽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하는 등 큰 활약을 펼쳤으나 끝내 전사하였고 강조도 통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하였으나 신하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서로의 피해가 커지자 강화를 맺고 고려가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고 거란에 막대한 양의 은과 비단을 바치면서 전쟁을 마치게 되었으나, 고려와 거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3차 고려-거란 전쟁은 1018년 12월 거란의 소배압이 10만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소배압의 명분은 고려가 송나라와 교류를 계속하면서 강동 6주를 거점으로 거란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역시나 전쟁 초반에는 개경이 함락되었으나 총사령관인 강감찬은 정예기병 만명을 급파해 후방을 공략하였고 현종도 청야전술로 적들에게 빼앗길 양식을 불태우며 저항하자 거란군이 퇴각을 시작하였다.

 

퇴각하던 거란군은 귀주에서 강감찬을 만나 배수진을 치고 결전을 벌였지만 고려의 정예기병 만여명이 후방을 습격하자 거란군 10만명 중 수천명만 살아서 돌아갈 정도로 큰 손실을 입었다.

 2, 3차 고려거란전쟁 당시의 왕은 현종이었으며 3차 전쟁의 주요 장소는 강감찬, 강민첨, 김종현 등이 있다.

3차에 걸친 고려거란전쟁으로 요나라는 다시는 고려를 침공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고려는 이후 100년 이상 큰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다.

 

1차 서희, 2차 양규, 3차 강감찬이라는 시대의 영웅들이 활약했고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의지의 왕 현종과 고난 속에서도 꾿꾿하게 버텼던 백성들의 노력이 합쳐진 자랑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고려거란전쟁 드라마는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극의 극적인 요소를 살리기 위해 일부 과장이 있고 재미를 위해 오락적인 요소가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더 재미있는 대하드라마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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